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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로운 길상사(吉祥寺)를 다녀와서..

최재춘 2024. 9. 24. 14:56

올 여름 폭염은 꽤나  드세다.

한가위 명절에도 열대야는 우리를 잠못들게 한다

그러나 세월앞에 장사 없다고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러나 찌는듯한 폭염도 우리들의 만남을 어찌하지 못하고 우리는 학창시절 생각과 가치를 함께하는 동기들의 모임을  추석의 번거로움이 한창인 명절 뒤 주말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바쁨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리 정한 연유야  동기 자녀 결혼식이 있기에 도랑치고 가재잡자는 사연있는 모임으로 계획된 것이다.

점심전 수서역에 모이기로 하고 저 아랰녘 신안에서부터 광주, 군산 으로부터 올라온 동기들이 서울에서 마중나온 동기들 차량 2대로 나누어 타고 성남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들이 간호장교인지라 사회도 여성 간호장교가 보고 또 초대 가수도 간호장교들이 춤추며 노래부르는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공연과 진행을 즐겁게 함께하고 우리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 구경을 위해  움직였다.

70년대 국내에는 3대 요정이 있었는데 선운각, 삼청각, 대원각으로 우리가 가고자 한 길상사(吉祥寺)가 바로 대원각이 변해서 길상사 절이 되었던 것이다 

원래 요정이었던 대원각은 일제시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기생으로 시작한 김영한(기명 김진향) 여사께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엄청난 부를 일구어 냈는데 어느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을 읽으시고 그 금싸라기땅 7천여평 그때 당시 싯가 천억대가 넘는 땅을 10년 동안 법정스님께 청원하여 시주하고 김영한 여사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으시고 대원각은 길상사라는 절로 새롭게 태어난것이다.

주변환경이 너무나 맑고 향기로운 길상사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녹아있겠지만 김영한 여사님(아호 김자야)과 천재시인 백석님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또 한편의 서사시로 회자되고 있다

함경도 정주에서 수려한 외모와  높은 학식 그리고 천재적인 글 솜씨로 이름을 날리던 백석(白石 백기행)은 어느날 김영한 여사님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중국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 나오는 자야의 이름을 따서 아호를 자야(子夜)로 지어주고 평생 함께 하기를 다짐하나 기생과 학교 선생님의 사회적 위치가 부모님들에 의해 연을 맺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 한국전쟁의 분단은 더 이상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

천억대의 재산을 시주하는 김자야 여사께 어느 문인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을때  이 천억의 자산은 백석의 시 한편보다 소중하지 못하다는 그 마음속에 두사람의 이별은 단지 지리적 물리적 이별뿐임을 알수 있을것이다.

두분의 마음이 절절히 남아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잠시 되뇌여 보며 두분의 천상재회를 빌어본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뱁새

 마가리:오두막

고조곤히:고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