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되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공장은 멈추고 도로는 한산하고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를 꺼려한다 .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신음하던 지구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공기는 맑아지고 산과 바다에는 산짐승과 물고기가 돌아오고 어쩌면 지구가 우리 인간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가 코로나 19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마냥 좋은것이 아님을 뒤도 돌아보고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모두가 절실히 느끼고 그러한 삶이 실천되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 흘러간다.
그 일상속에서 오늘은 한분의 삶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올해 87살의 그분은 5남 5녀의 여덟째로 딸로서는 막내였다
조선시대 마지막 유배지 영향을 받아 유교적 학풍이 집안을 가득 채우는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삶은 한국 전쟁의 좌우 이념 논쟁 앞에 세분의 오빠와 한분의 언니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의 서곡을 장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은 그 슬픔을 가슴에 묻은채 고향을 떠나 결혼이라는 이름아래 타지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름 유복한 종가집 맏며느리로서 3남3녀를 두며 살아가던 삶은 한량이던 지아비의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해 급기야 가세는 기울고 그 뒷바라지를 오롯이 혼자서 감내를 해야만 했다.
완고한 시어머니 아래에서 여섯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쇠스랑으로 남산밭을 일구시던 그 모습을 돌이켜 보면 어쩌면 그분의 삶 인생 대부분이 잠시의 여유도 없이 오로지 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분은 그 고단한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먼저 두언니를 보내고 또 두 남동생도 앞서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정도 자식들 다 장가보내고 삶의 여유를 찾아갈 즈음 암이란 놈이 그것도 두개가 연달아 찾아 왔다.
하지만 그녀는 강했다
결코 좌절하지 않고 굳건히 일어서서 한걸음 한걸음 행복한 삶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세월앞에 그리고 다시 찾아온 암 앞에서는 더 이상 기력을 내기가 힘들었는지 이제는 집에서 그냥 쉬고 싶다는 이야기만 하신다.
아픔이 있어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슬픔이 있어도 슬프다고 당당히 한마디 말을 못한채 숨죽여 살아온 세월이 어언 70년 그분은 한꺼번에 보낸 세분의 오빠와 한분의 언니 죽음 앞에 평생의 삶을 살얼음 걷듯 그렇게 살아 오셨던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이야기 해도 되건만 더이상 기력이 없으신지 그냥 누워만 계신다.
이별의 시간이 멀지 않음을 느끼면서 어버이날인 오늘 다시한번 그 분을생각해 본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87세의 삶을 살고 계시는 분 그분은 나의 어머니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