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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재회를 꿈꾸며...

최재춘 2019. 3. 19. 17:37

봄이오니 들녘의 새싹은 파릇파릇하고 긴 겨우내 움츠려있던 산수유 매화 벚꽃이 아래녘에서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활짝 켠다.

미세먼지의 공습속에서도 자연은 쉬지않고 한걸음 한걸음 더딘 걸음이지만 그렇게 걸어 왔음을 알수 있다.

요며칠 미세먼지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쉬지않고 운동을 하니 급기야 아디다스 축구화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제 몸을 찢어가며 머나먼 이별을 고한다.

나름데로 이름있는 메이커지만 내 몸무게를 감당하며 버티기가 한계에 온듯하다.

그래도 지금에야 나이키 아디다스 하며 메이커라는 축구화나 신발을 신고 걸어다니고 축구를 하지만 내게 있어 이런 편하고 튼튼한 신발은 사실 남의 일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초등학교시절에는 당연히 검정 고무신의 시절이었고 그것도 비오는날 흐르는 개천을 잘못 건너다 고무신이라도 잃어버리는 날에는 그냥 맨발로 집에 돌아 오기가 다반사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운동화를 신게 되는데 우리는 보통 시장에서 파는 길거리 저가 운동화를 신은 반면 그래도 하얀밥을 먹는 친구들은 타이거나 월드컵 그리고 스펙스를 신었는데 그중에서도 자동리 진변에 사는 어느 친구의 하얀 나이키 신발은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나에게도 월드컵 정도는 신을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이후 프로스펙스  프로 월드컵을 번갈아가며 신었던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군대와 직장생활 속에서는 주로 구두를 신다가 직장생활에서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조기 축구회를 들어가게 되고 다시 축구화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도 좋은 축구화에 대한 경험이 없다보니 싼 축구화를 사서 발뛰꿈치 상처를 달고 사며 대일밴드로 그 아픔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다 2005년경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들이 함께 큰 체육대회를 하게되고 내가 그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친구들이 나이키 축구화를 한컬레 사와서 주기에 처음으로 나이키 신발을 신어 보게 되었다.

운동장을 뛰는데 전혀 발뛰꿈치가 아프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우면서 튼튼하기는 또 얼마나 튼튼한지..

나는 운동장을 날아갈듯이 뛰어 다니며 왜 사람들이 메이커 메이커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후부터 나는 될수 있으면 신발은 메이커를 사서 신을려고 한다.

축구를 하는데 뛰꿈치에서 나는 피에 아픔에 사실 무리하게 뛰면서 그 아픔을 잊으려고 하는 바보스러운 나의 모습들이 지금에야 추억으로 뒤돌아 보지만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실제로 저가제품이 몸에 무리를 주고 일찍 파손되니 오히려 몸에도 좋고 튼튼한 메이커가 가성비측면에서는 훨씬 좋은것을  왜 그때는 몰랐는지...

사실 경제력이 여유가 없다보니 그런 근시안적인 선택을 할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러한 경험이 지금은 신발뿐 아니고 옷도 될수 있으면 메이커를  선호하는 나로 만듯것 같다..

이제 아디다스 축구화하고 이별을 해야할 시점이다.

이번에는 나에게 메이커의 그 참모습을 보여준 나이키하고의 재회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