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찜통 더위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에 지구가 경고를 보내고 있는것이다.
참고참던 지구도 더이상은 감내하기가 힘든가 보다.
그러나 더 감내하기 힘든 슬픔은 이 탐욕의 더위속에 한평생을 그 탐욕에 맞서 싸우시던분이 오늘 스스로 생을 마무리 하신것이다.
작은 실수마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고 그렇게 먼저가신 그분에게 돌을 들수 있는 의원들은 몇분이나 계실런지..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탐욕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는 깨어있는 자들의 커다란 고민이고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고려말 일부 권문세족들의 부의 편중을 극복하고자 조선을 세운 정도전과 이성계는 토지를 몰수 일정부분 분배의 정의를 실시하여 나중에는 쌀밥을 이(李)밥 즉 이성계가 준 밥이라는 유래를 만들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도 중.후기에 들어가면 또다시 일부 세력들에 의해 토지의 집중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수많은 백성들의 배고픔으로 나타나게 되자 다시금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책들이 나오는데,
반계 유형원은 균전제(均田制)를 주장하여 토지를 나라에서 몰수후 성인 남자들에게 신분에 맞게끔 재분배하자는 안을 내놓는데 혁신적인 안임에도 신분제을 인정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호 이익은 한전제(限田制)를 제시하여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업전을 두어 이 토지는 전혀 매매를 못하도록 하고 나머지 토지는 매매가 가능하도록 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 생활이 되도록 정책을 제안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정전법과 여전법을 주장하였는데,
정전법(井田法)은 옛날 중국 주나라에서 실시하였던 정책으로 토지를 우물정(井)자 처럼 아홉군데로 나누고 여덟가구가 각각 한구역씩 농사를 하고 가운데는 공동으로 경작하여 세금으로 내는 방식이다.
여전제는(閭田制) 약 30가구를 1여로 하여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작후 그 수확량을 투입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는 제도다.
이들 제도는 모두가 토지의 집중을 타파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여 모든 백성들을 자영농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회복지적인 정책들이었다.
이렇게 볼때 언제 어디서나 시공을 초월에 똑같은 숙제가 놓여 있었고 그 시대는 농업이 중심인 사회이기에 토지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분배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였고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인 만큼 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재분배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재분배는 더욱 어렵게 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것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 있는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진실이다.
이제 그 탐욕을 멈추고자 노력하던 한 사람은 우리곁을 떠나갔다. 이제 남은 자들에게 그 역사적 소임은 온전히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