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달려온 삶을 잠시 뒤돌아 본다.
어디만큼 달려가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쉬지 않고 달려온것만큼은 분명하다.
요며칠 감기에 찬바람을 피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아침운동을 못했더니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그러다 보니 문득 쉼없이 달려온 52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첫 출발은 불안불안한 시작이었다.
적거리에서 중앙초등학교까지 가는길이 초등 저학년에게는 결코 가깝지만은 않기에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빠구리(중간치기)를 수시로 하였다. 아침에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서서 중간쯤 가다가 동네 형들과 함께 중매산으로 올라가 산딸기에 보리똥에 잔뜩 따먹고 산에서 놀다가 다른 친구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에 가기가 겁날정도였다. 어느날 학교 앞까지 갔는데 같은반 친구가 선생님이 학교에 다닐지 아닐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고 해서 에라 모르것다 하고 다시 집으로 그냥 돌아온적도 있었다.
그렇게 초등 2학년때까지의 방황을 뒤로하고 3학년때부터는 단 한번의 결석도 안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교도 그다지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다른 친구들이 다니니 그냥 마지못해 다닌것 같다.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줄곧 맡아왔던 학급 반장은 중학교에 와서도 여전히 나의 차지였다.
별로 하고픈 마음은 없어도 언제나처럼 친구들에 의해 추천되어 반장의 역할을 하곤 하였다.
고등학교는 공부꽤나 하는 친구들이 도시로 나갈때 그래도 시골 고등학교에 다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공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것 같다.
그래서 시골에서 어떠한 배경도 없이 출세하는데는 육군사관학교가 가장 좋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따라 육군사관학교를 목표에 두고 학교에서 자고 먹고하며 부단히 공부를 하였다.
드디어 육사시험을 보는날 나는 그 시골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기지 바지에 구두까지 얻어서 올라갔는데 아뿔사 2박3일동안 체력단련 시험부터 인성, 적성 면접까지 특히 오래달리기 시험까지 하는데 결국은 맨발에 기지 바지를 걷어 올려 운동장을 도는데 아뿔사 15명 우리조에서 1등을 하니 면접관이 신통방통 눈초리로 쳐다보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1차시험 합격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육사에 떨어져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대학에서도 역시나 누구의 도움없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방도를 찾으니 특히나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1회로 나오니 선배가 없기에
그나마 선배가 생길수 있는 학군 후보생을 지원하여 대학졸업한 그 다음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소대장으로 2년넘게 근무하고 제대한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여 오늘까지 어언 27년의 세월이 흐른것이다..
지금도 나름데로는 또다른 목표를 위해서 부단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쉬이 그 자리가 오지 않음을 알기에 혹여 기회가 오면 자연스러이 다가갈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으로 있고자 한다.
욕심 내지않고 물흐르듯 가다보면은 조금은 답답하게 보일지 모르나 분명 올바른 길이기에 뚜벅뚜벅 쉼없는 발걸음 오늘도 내딛어 본다
멀고 긴 걸음일지라도 즐겁게 가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