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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충칭) 연수를 마치고...

최재춘 2017. 8. 21. 11:15

어느해 보다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인천공항을 뒤로 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서 해외 연수 일환으로 중국 중경(충칭)에 공장을 견학하고 관광을 할수 있는 기회를 준것이다. 약 3시간 30분에 걸쳐 옴짝달싹 하기 힘든 중국국적 비행기를 타는것도 또다른 경험이었다.

찾아간곳은 중경(충칭)으로서 중국의 4대 직할시(북경, 상해, 천진, 중경)중 하나로 보시라이 당서기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이 진행되다 보시라이 실각후 잠시 정체된 상태에서 최근 시진핑 방문으로 또다시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중공업 도시다.

4대 직할시중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하여 양쯔강(장강)을 중심으로 삼국지 쟁탈전중 유비의 촉나라에 속했으며 산세가 험하고 안개가 많아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다.

특히 중.일전쟁시 중경에서 막힌 일본군이 매일 안개가 자욱한 중경시를 무자비하게 비행기로 폭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어 지금도 가장 반일감정이 심각하게 남아있는곳이기도 하다.

또한 세계 최고의 삼협댐이 있고 중국 전통 먹거리 거리인 자기구 마을 그리고 양쯔강(장강)을 따라 네온싸인이 휘황찬란한 야경 유람선과 크루즈 선단들..그래도 그 중 백미는 홍애동의 야경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더위가 상상을 초월하여 중국의 3대 화로(무한, 남경, 중경)에 속하기도 한 중경에 우리에게 뜻깊은 곳이 있기에 바쁜 시간을 뒤로 하고 찾아가 보았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청사였다.

나는 임시정부는 상해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무려 8번이나 일본에 쫒겨가며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그 마지막 임시정부가 중경임을 알게 되었다.

1919년 4월13일 3.1만세운동을 계기로 나라를 되찾아야 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상해에 세운 임시정부 그리고 일제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를 받으면서도 결코 그 임시정부만큼은 유지하겠다며 8번이나 옮겨다녔단다.

그리고 그 무더위속 중경에서 조국의 광복을 염원했던 독립 지사들의 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속에서 우리 헌법 전문이 왜 기미3.1운동으로 대한민국의 건립을 삼고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며 일부 정치인들의 1948년 건국일 주장이 모두가 희망을 잃고 친일에 물들어 갈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져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마치 이는 그동안 친일에 동참하다 1945년 해방후 잠시 건국에 참여하면 건국의 유공이 있는것처럼 호도하게되어 그 힘든시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쓰려져간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반하는 역사의 배신이기에 이번 중경시 임시정부 청사 방문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4월 13일임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늘에 우리가 있는것은 암울하고 힘든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초개와 같이 희생하셨던 선열들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