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밤새 소리없이 내리더니 이제는 사뭇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금도 내리는 이 비는 여기 저기 가을 가뭄에 힘들어 하는 모든 분들에게 단비로서 그 소임을 다할것이다.
보건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힘 앞에는 무기력한 우리같다
일부에서는 인공 강우를 또는 제방을 쌓아 가뭄에 대처한다고 하나 오랜 가뭄에는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비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렸을적에는 가뭄에 어르신들이 높은 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던적이 있는것 같은데 나라에서도 임금님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두손 놓고 하늘만 쳐다보던 시절 과감히 가뭄과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려고 하였던 왕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세종대왕이시다..
세종대왕은 농사시기 가뭄이 심하자 그동안 중국 역법(달력)을 사용하던 조선에서 우리 역법을 만들어 시행하고자 하였고 장영실로 하여금 하늘을 관찰하는 천문기구와 강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만들어 가뭄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돌이켜 보건대 왜 세종대왕 시절에는 유독 창의적인 인재들이 넘쳐 났을까?
과학에 장영실 학문에 성삼문과 집현전 학자들 음악에 박연 관료에는 황희 국방에는 여진족을 정벌한 최윤덕과 6진을 개척한 김종서등..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기라성 같은 분들이 넘쳐 나고 있는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리더의 창조적 습관이다라고 광운대 이홍 교수님은 말씀 하시고 계신다
세종대왕시절에 특별히 인재가 많이 태어난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라는 리더의 창조 습관이 당시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언제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 문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신분이나 직급을 따지지 않고 경청하였고 특히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에 대해서도 선입관 없이 적절히 활용하여 창의성의 꽃을 피워 냈던것이다.
오죽하면 우리가 성질이나 얼굴이 괴팍하여 나쁜 의미로 사용하는 고약하다라는 말이 바로 세종대왕때 사사건건 반기를 잘 든 고약해(高若海 1377~1443)라는 신하에서 유래되었다는 그럼에도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하여도 세종은 그를 품어 안고 대사헌이라는 자리까지 그를 임명하여 함께 일하였다.
결코 반대가 나쁜것이 아님을 그리고 세종대왕 자신도 틀렸을수 있음을 그래야 신하들이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수 있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열린 사고로 가장 창의적인 세종대왕의 리더쉽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문자와 화폐를 단일화 하고 도로를 넓히며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으나 자기의 독선에 갇혀 최초 통일후 15년만에 제국을 망가뜨린 진시황과 대비되며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