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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밥풀꽃을 넘어 새아가로...

최재춘 2015. 3. 17. 10:15

어제는 오랜만에 옛날 군대시절 중대장님 부부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였다.

포천 오뚜기부대에 소대장으로 첫 근무를 했을때 학교 선배요 학군 선배인 중대장이셨는데 이제는 대령을 달고 부여단장으로 지역에 내려 오신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녀들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벌써 자녀가 성장해 5월에는 며느리를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암튼 시아버지들은 며느리가 무척이나 좋은가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 며느리라는 말이 사실은 남존여비 사상이 깊숙이 내포된 단어라는 사실은 모른채 사용을 하고 있다.

며느리는 바로 단순히 아들의 아내가 아닌 아들에 기생하는 더불살이 하는 의미가 내포된 단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 전해져 오는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며느리의 서글픈 더부살이의 의미를 바로 알고 이제는 며느리(기생하는)가 아닌 새로운 자식이 생긴 새아가로 부르는것이 어떨런지 다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간혹 깊은 산속에 가면 며느리 밥풀꽃이라는 꽃를 보게 되는데 이 꽃의 슬픈 전설은 옛날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하던 어느 며느리가 두 알의 밥풀 때문에 숨을 거두고 만 사연이 그 줄거리이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밥을 지으면서 밥이 뜸이 들었나 보기 위해 솥뚜껑을 열고 맛본 그 두 알의 밥알. 다 삼키기도 전에 이를 시어머니가 보게 되고 며느리를 밥도둑이라 몰아붙이면서 가시 쫑긋한 부지깽이로 혹독하게 다스려 이에 견디다 못한 며느리는 “제가 먹은 것은 뜸이 들었나 보려고 했던 두 알의 밥풀이에요.”라며 미처 삼키지 못한 밥풀을 혀끝에 내 보이며 억울함에 화가 치밀어 오른 끝에 그 밥풀이 목에 걸려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이렇게 죽은 며느리는 애소한 밥풀나무로 환생하게 되었는데, 죽어서도 자기 신세가 처량하여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만 꽃을 피우고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또 며느리서까래(한문으로 婦椽 또는 附椽)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옛날 임금이 거처할 대궐을 짓던 어느 대목장(목수)이 마름질을 잘못하여 서까래를 너무 짧게 자르고 말았다. 짧은 서까래를 걸어 놓고 보니 집이 제대로 설 수 없는지라 대목장은 큰 벌을 받게 되었다. 이 때 사정을 안 며느리가 “아버님,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모난 서까래를 잇달아 걸고 짧은 것은 집 모양을 내느라 일부러 멋을 부렸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라는 멋진 그럴싸한 제안을 내놓아 그렇게 고하게 되었고 그 며느리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중벌을 받을 줄 알았던 대목장은 오히려 임금으로부터 큰 상을 받고 명장明匠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본 서까래에 덧붙이는 작은 것을 ‘며느리서까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