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을 깨우는 매미의 울음 소리도, 아스팔트 위의 타는 듯한 무더위도, 자꾸만 희망을 앗아가는 꽉 막힌 정치권도 모두가 우리의 바램과 저멀리 있건만 그래도 이 여름을 우리와 함께 하는 착한이가 있으니 그 이름 "명량"이어라.
때는 조선 선조시절 1592년 일본은 그들의 정치적 갈등을 외부 침략으로 수습하고자 조선을 침략한다. 이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고 세자 광해군은 남아서 일본군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이땅의 백성들은 비록 임금이 나몰라라 도망을 가더라도 치열하게 일본과 싸우니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 대첩)을 통해 일본의 병참을 차단하여 3년간의 휴전에 들어간다.
그러나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1597년 다시 일본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선을 침략하니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즉 정유년에 다시 침략한 난인것이다.
그러자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에 가서 일본군과 싸우라고 하나 이순신은 정보를 불신하고 출전하지 않으니 일본군의 침략 앞에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으로 하여금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 일본군과 싸우게 한다.
그러나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괴멸을 당하고 이 전투에서 경상 우수사 배설이 12척의 배를 가지고 탈영하니 아이러니하게 조선의 수군 12척이 보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에 선조는 조선 수군이 뛰어나서 연전연승 한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지도력이 뛰어나 승리할수 있었음을 알고 다시 조선 수군을 맡기니 이에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 330척과 맞서는 명량해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이 싸움의 결과를 불을 보듯 뻔하기에 주저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은 죽기를 각오하고 지형 지물을 이용하여 명량(울돌목)으로 적을 유인하여 해전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하니 이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 3대 대첩(한산도 대첩,명량해전,노량해전)중 가장 빛나는 승리중 하나인 명량 해전인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유탄에 파란만장한 성웅의 삶을 마감하며 7년간의 임진왜란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여름 휴가기간 보았던 명량은 찌는듯한 무더위와 꽉막힌 정치권속에서 우리에게 또다른 영웅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러한 우리들의 바램들이 광해를 변호인을 명량을 천만이 넘는 관객을 통해 목놓아 불러보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진정 우리를 이끌어줄 진정한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 처럼 명량의 냉혹한이 시대 진정한 리더 진정한 장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