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흥에 겨워 돈이나 재물을 마구 사용할 때 보통 흥청망청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즉 이리 쓰다보면 살림이 거덜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깃든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백성들이 사용하게 된것은 조선 16세기초 연산군때부터이다
조선 오백년 27분의 왕중 10번째 왕으로서 재위하다 중종 반정으로 쫒겨나 군으로 봉해진 연산군, 그 시대에 무슨일이 일어났고 그리고 흥청은 무엇이고 망청은 무엇인가?
조선 9대왕 성종은 일찍 왕비를 보내고 계비를 얻게 되는데 이분이 바로 폐비 윤씨다 그녀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강하여 결국은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게되고 이로 인하여 유배되었다 사사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연산군은 왕으로 봉해져 10대 왕으로 조선을 다스린다.
이때 조선의 정치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훈구파가 중심이고 서서히 재야에서 그 실력을 갈고닦은 사림파가 언론삼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에 진출하여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차츰 대두된다.
이때 사림파를 제거하고 싶은 훈구파에서는 왕의 권력을 등에 업고 1498년 사림파 김일손이 쓴 사초(내용은 성종때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썼는데 이를 사초에 인용함 즉 연산군 할아버지인 세조가 단종을 죽인것을 초나라 항우가 회왕 의제를 죽인것을 빗대어 쓴글)를 문제삼아 그동안 진출해 있던 사림파를 싹쓸이하는 무오사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1504년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어머니 폐비윤씨 죽음을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사림파 정여창 김굉필등을 죽음으로 내모는 2차사화 감자사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되자 독재 왕권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고 신하들은 입을 다물게 되고 궁은 아첨하는 자들로 가득차게 되니 왕은 더욱더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궁궐주위 민가를 철거하여 사냥터를 만들고 채홍사를 두어 전국에서 기생을 뽑어 오게 하고 심지어는 이쁘다는 이야기만 있으면 신하의 처도 안가리고 겁탈을 하게된다.
이때 전국에서 뽑혀온 1000명의 기생들과 경회루에서 밤낮으로 주지육림을 벌이게 되는데 이들 기생을 일컫어 “흥청”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의 입을 통해 흥청으로 인해 망하게 된다라는 의미로 흥청망청이 회자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말 이인임은 정적이 없는 권력은 고인물이고 그 고인물은 반드시 썩게되어 종국에는 권력을 잃고 죽게되니 권세와 부귀영화를 오래 누리고 싶으면 정적을 곁에 두라고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두번의 사화를 통해 그에게 옳은 말을 하던 사림들을 전부 제거하고 결국은 흥청망청하더니 젊은 나이에 쓸쓸히 유배지에서 죽어갔던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경고한다 그리고 경계하라고 한다. 제어하지 못하는 권력의 집중은 망청의 지름길이라고..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비판과 애정어린 충고를 받아 안을때 만이 희망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