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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

최재춘 2014. 2. 12. 10:14

뮤지컬 명성황후를 처음으로 보았다.

군산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으로 우리 회사와 함께 공동으로 군산시가 주최하여 관람을 할수 있는 기회가 된것이다.

수많은 배우들이 직접 노래 부르며 박진감 있게 이어지는 두시간 가량의 뮤지컬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슬픈 역사를 함께 해야 하는 분노와 서러움은 다시는 이땅위에 저런 야만적인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교훈을 함께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선말 26대 고종의 왕비로서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변화의 한 복판에서 마지막까지 조선을 부여잡고 부활을 꿈꾸었으나 결국은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는 치욕을 겪어야 하였던 비련의 여인 명성황후..  조선말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정치는 문란해지고  백성들은 배고픔에 하루하루를 치떨리는 삶으로 살아가는 시절 세계는 산업혁명으로 숨가쁘게 돌아가고 제국주의에 눈먼 강국들은 새로운 수탈의 식민지를 흡혈귀처럼 찾아 헤매이는 그때에 동방의 조용한 나라 조선은 외부적 환경에 철저하게 귀를 닫고 청나라의 보호아래 흥청망청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무너지고 있었다.

 

이때 좀더 내실을 다지려는 흥선대원군과 문호개방을 통해 점진적 개혁을 시도하려는 민비의 대결은 조선의 앞날을 더욱 어렵게 하고 1882년 신식군대와 차별에 분노한 구식군대는 임오군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민비는 청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의 패배는 일본의 독주를 허용하게 되고 이러한 국제 정세에 러시아가 일본 견제를 위해 민비와 손을 잡게 되나 일본은 반일의 선봉에 있는 민비 시해를 통해 조선을 손아귀에 넣고자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키게 되고 이들 낭인들은 한나라의 국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태우는 만행을 뻔뻔하게 저질렀던것이다.

 

한때는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치며 결코 물러서지 않은 불굴의 의지로  한반도를 호령하던 우리가 겨우 수십의 일본 낭인들에 의해 치떨리는 굴욕을 당해야 했던 을미사변.. 내부적 분열이 불러온 이 참화는 두고두고 우리들에게 뼈아픈 교훈으로 남게되고 다시는 똑같은 역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 정세도 모두들 자국의 이익 앞에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냉혹한 시기인데도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만이 전부인양 정쟁에 몰입해 있는 무지몽매한 정치인들에게 을미사변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되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