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이때쯤 가을비가 자주 오는것은 별로 반갑지 않다. 마지막 결실이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고 따듯한 햇살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밤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풍성한 결실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가을 결실 작물인 고구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감자 밀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구황 작물(救荒作物: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인 고구마는 18세기 영조시대 일본으로 간 통신사 일행이 처음으로 들여왔다. 뒤이어 들어온 감자와 가끔씩 혼동 되기도 하였는데 어릴적 우리는 고구마를 감자(감저)라고 불렀고 감자는 북감자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고구마 감자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다.
아무튼 이 고구마는 진정 구황작물답게 어릴적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쌀보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시절 팥과 밀가루 그리고 고구마쪽(절강)을 풀어서 죽을 쑤면 그 맛은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어릴적 우리 입맛을 돋구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배고픔에 지쳐 가장 먼저 가마솥을 열어보면 고구마쪽 죽이 끓여져 있고 예상대로 허기진 배는 단숨에 죽을 한 양판 요구하고 그 요구에 따라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죽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구마는 보통 겨울에 씨고구마를 썩지 않도록 잘 보관하였다 봄에 거름을 듬뿍주고 심는다 그러면 고구마 순이 우거지고 그 순을 다시 밭 고랑에 심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배고프기 때문에 그 씨고구마도 삶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단맛은 다 빠져 나가고 질기고 맛은 없지만 그래도 한끼를 채우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던것 같다.
하여튼 이렇게 심어 놓으면 그 고랑에는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고 보통 가을 추수때 아버님이 쟁기를 가지고 와서 골 따라 쟁기질을 하면 한여름을 잘 자라준 붉은색 고구마가 새색시처럼 부끄럽게 제 얼굴을 살며시 내민다. 그럼 우리는 그 쟁기 뒤를 따라가며 고구마를 한쪽으로 모은다.
한쪽에서는 절강기를 이용하여 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리는 작업을 하였는데(영남에서는 절강을 빼떼기라고 함) 우리는 이것을 농협에 판매를 보기도 하였다(보통 절강 판매본다고 함) 절강은 얼마나 고운 색깔로 잘 말렸는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곤 하였다.
그리고 판매를 보지 않은 고구마쪽(절강)은 우리들에 배고픔을 해결하는 죽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와 즐거운 만남을 하였던 것이다.
한겨울에는 소죽을 쑤고 난 불쏘시개에 고구마를 구워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 맛 또한 긴긴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금씩 씨고구마까지 갖다가 구워 먹어서 부모님께 혼난적도 부지기수 였다.
지금은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 아마도 이 고구마가 있었기에 굶지 않고 어릴적을 버틸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을 해보면서 다시 한번 구황작물의 으뜸 고구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