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산감 술조사 이야기..
어릴적 땔감 나무가 귀하던 시절 우리는 산감이 그리 무서웠다. 그냥 마을에 산감이 나타났다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산으로 냅다 내달렸다 그리고 산감이 사라지면 산에서 내려왔다.
산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형들 누나들을 따라 도망을 하곤 하였는데 지금에야 그것이 산림 감독원이라는것을 알고 왜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그리 무서웠는지. 산에 무단으로 나무를 베어 오는 것과 산불을 감시하는 사람인 산림조합 직원을 우리는 마치 일제시대 순사마냥 무서워 했던것이다.
그 당시에는 땔감이 부족하여 무분별하게 너도나도 산에서 나무를 베고 갈퀴로 긁던 시절이라 산에 나무를 하려면 허가를 받고 땔감 나무를 하곤 하였는데 그러나 산이 없거나 또 허가를 받지 않고 땔감을 구하는것이 부지기수라 산감의 등장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등장과 똑 같았다.
그리고 또 한사람의 저승사자 술조사(밀주 단속반원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누룩을 담궈 막걸리를 빚어 마시는것이 일반화 하던 시절 술의 제조는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못 빚도록 하여 술조사들이 가끔씩 마을을 돌곤 하였다.
그러면 각 집마다 빚은 술과 누룩을 감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통 각 시골집에는 일제시대부터 곡식을 감추어 두던 구덩이가 있었다 광이나 정기에(부엌) 땔감나무를 두는 밑에 커다란 구덩이가 있어 겨울이면 고구마를 저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다 술과 누룩을 은밀하게 감추고 그 위에다 땔감 나무로 위장을 하고 모두 집 밖으로 도망을 가곤 하였다.
아마도 술에 대한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개별적으로 술을 빚는 것을 엄격히 금하곤 하였는데 우리에게는 술조사와 산감의 등장 자체가 일본 순사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곤 하던 어릴적 그 시절이었다.
지금에야 시골에 가면은 읍사무소나 군청 경찰서에 가더라도 모두가 봉사하는 마음속에 일처리를 하는데 그 당시에는 공공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군림하던 시절이라 우리에게는 그렇게 무섭게 다가왔던것이다.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공권력의 쓰임새도 우리의 삶과 더불아 함께 나아졌지만 아직도 일부 지각없는 곳에서는 옛날의 산감이나 술조사의 모습들을 유지하고 있어 참으로 서글프고 애석하기까지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우리 헌법은 분명히 적시하고 있기에 헌법이 올바르게 실현되는 희망과 행복이 넘실되는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