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신안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14개 읍면이 이제는 연륙이 되어 육지화 되었지만 100년전만 하더라도 전부 섬이었다 특히 내가 태어난 지도는 해제반도쪽 섬으로서 그 당시에는 흑산도 임자도와 더불어 3대 유배지였다.
1896년 지도군으로서 그 위상을 가지고 있던 지도에는 향교가 세워졌고 그래서 유생들에 활발한 활동들이 있었다. 구한말 위정척사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 화서학파 이항로 선생의 제자인 김평묵이 지도로 유배를 오게 되고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게된 지도에는 유학이 활짝 꽃피우게 된다.
이웃섬 임자도에서도 유생들은 구름처럼 몰려와 김평묵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학의 도를 닦게 된것이다. 난 중고등학교 시절 백련동에 있는 두류산으로 소풍을 가게 되면 혼자서 바위를 살피곤 하였는데 그 바위에 한자로 새겨진 글씨를 보면서 옛날 유생들이 이런곳에다 글씨를 새겨 놓았구나 하고 생각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몇해 지나서 고3때인가 가을에 외가집 금출동에 놀러 갔는데 그때 외삼촌이 음식을 장만해 제를 지낸다고 두류산을 올라간다기에 함께 가보았다 두류산 중간 지점에 비석이 다섯개 있었고 내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면암 최익현선생님의 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옆에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그리고 외증조할아버지 나유영 이렇게 다섯분 오선비 제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류산이 단순히 우리가 먹고놀던 소풍을 즐겼던 산이 아닌 구한말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 이땅의 유생들이 유학을 깨우치며 나라를 걱정하던 역사의 얼이 서려 있는 뜻깊은 산임을 알수 있었다.
지금도 매년 가을에 지도와 임자도에 계시는 유생들이 함께 두류산 제단에 모여 다섯분의 선비에 뜻을 기리는 제를 지내고 있다.
이제는 조선 유학의 마지막 성지가된 지도읍 두류단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읍내에 있는 향교와 더불어 후대에 기리 그 정신을 이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고향의 역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도 혹시 고향에 가면은 한번쯤 두류단에 올라 바위에 글씨도 제단도 한번씩 가서 보면 좋겠다...
중학교 뒷산 중맥산보다 더 높아 소풍 가기가 두려웠던 두류산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