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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과 전주최씨 평도공 학술세미나..

최재춘 2021. 11. 15. 14:50

며칠전에는 전주최씨 평도공종중 후원하에 전주에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전주 최씨는 크게 문열공(최순작),  문성공(최아),  문충공(최군옥),  사도공(최균)파로 나누어 지는데 우리는 문열공을 시조로 하여 8세때 평도공(중시조)을 중심으로 종중이 운영되고 있다.

물론 9세때 6개 지파가 별도의 파시조 종중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심은 평도공 종중이다.

평도공 선조님께서는 고려말 첫번째 전라도 관찰사로 내려오시게 되어 풍남문 성을 축조하여 전주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였고 이후 조선초에는 서울로 올라가 숭례문을 축조하였다.

워낙 충. 효에 사상이 투철하시어 이후 청백리에도 녹선 될정도로 강직한 분이셨다.

따라서 전주에서는 최근 관찰사가 근무하였던 전라감영을 복원하고 초대 관찰사이신 평도공 선조님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 하였던 것이다.

군산대 역사교수님과 전주문화원장이 발제를 하였는데 좀더 선조님들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전주에는 객사(관용 거처인 관사)가 현재 남아있어 자주 가보곤 하는데 그곳 현판에 쓰여져 있는 글씨가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 쓰여져 있고 이 풍패라는 뜻이 중국에 전한시대 한고조 유방에 의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를 금번 학술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원래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에 봉건제를 채택하여 천자가 주변에 봉토를 친척이나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에게 일정한 충성을 맹약받았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관계가 소원하게 되고 결국은 서로 이전투구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게 되자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에서 관리를 내려보내는 중앙집권적 관리를 하게되었다.

이어서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는데 정권을 잡게 된 한나라 유방의 고향이 바로 패군 풍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후에 풍패는 곧 왕을 배출한 지역을 일컫게 되었고 전주도 조선을 건국한 전주 이씨 이성계의 고향이라고 뜻에서 풍패지관이라고 객사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전주에 그 성이 남아 있는 풍남문도 풍현의 남쪽이라는 뜻이고 지금은 사라진 패서문은 바로 패군의 서쪽이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역사를 알고 그 이름을 다시 새겨보면 훨씬 재미있고 새롭게 다가옴을 느껴본다.

또 익산 함열에 있는 향교에 가보면 외삼문과 내삼문에 각각 승당문 입실문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논어에 보면은 자로는 승당을 하였고 안연은 입실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바로 학문에 경지가 자로는 대청마루까지 올라왔고 안연은 방안까지 들어왔다는 의미다.

공자의 수많은 제자중 아마도 대청마루까지 올라온 제자가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문 수준도 일반 사람이 감히 따라가기가 어려운 위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모르고 무심코 지나치는 글귀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뜻을 알고 보면은 전혀 낯설지 않음을 알게되면서 다시한번 훌륭하신 선조님 덕에 또 한걸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 봄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