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살과 육시는?
묵묵히 한발한발 내딛는 세월의 무게속에 어느덧 가을의 문턱도 아스라히 멀어져 간다.
장마에 태풍에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버틴 황금 들녘은 농부님네들의 지난 여름 땀방울을 배신하지 않고 풍성한 결실로 화답을 하고 있다.
아직도 휑휑하는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더욱 움추리게 하고 여기저기서 활동량이 떨어지고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이 우울함을 때론 스트레스의 아우성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평상시같으면 그냥 넘어갈 말 한마디도 날카로운 창끝으로 되돌아 온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외치는 말속에 우리는 진심이 아니지만 너무나 끔찍한 말들을 무심결에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뱉곤 한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자주 사용하는욕중 오살놈 육시할놈은 그 의미를 알고 보면 섬뜩할정도이다.
오살(五殺)은 말 그대로 목과 양팔 양다리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서 죽인다는 이야기다.
육시(戮屍)는 죽은 시체를 다시 절단하겠다는 의미로 보통 관속에 시체를 참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육시의 한 방법이 되겠다.
또 능지처참을 한다고 하면서 소가 팔과 다리를 찢는 장면이 조선시대 사형의 한 방법으로 사극에 나온곤 하는데 이는 능지처참이 아닌 거열(車裂)이고 능지처참(陵遲處斬)은 언덕을 오르때 천천히 오르듯이 사람을 사형시킬때 살을 포뜨듯이 수십 수백회를 칼로 도려내어 천천히 죽이는 사형의 한 방법이다.
한편 어떤 일을 아무리해도 방법이 없을때 사용하는 단어가 도무지다 즉 도무지 방법이 없네! 이렇게 사용을 하는데
이 도무지는 조선시대 사형의 방법중 하나인 도모지(塗貌紙)에서 나온말로 결박된 상태에서 얼굴에 젖은 창호지를 한장한장 발라 창호지가 마르면서 질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도무지 어떻게 해볼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듯 하다.
아무튼 이 코로나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평상시와 다르게 더 오래 한 공간에서 얼굴보며 지내야 할 시간이 늘어난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운 모습들이 자주 발생할수 밖에 없다.
이렇더라도 이제는 이러한 삶이 자주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에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며 말 한마디도 가려서 사용하여 이 어려움을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