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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 사고 멋진 해설사님..

최재춘 2018. 8. 4. 16:24

지금은 휴가중이다.

그런데 너무나 더워 시골에 잠깐 들러 부모님 얼굴 본후 그리고 옆지기와 무주에 다녀온걸로 올 여름 휴가를 마무리 하고 지금은 사무실에 나와 책을 보고 있다.

무주에는 전에도 몇번 다녀온적이 있었으나 이번 휴가처럼 느긋하고 알차게 다녀온적은 없는것 같다.

아마도 그 토실토실한 여행의 중심에는 적상산 사고 해설사님과의 만남이 없었으면 앙코없는 찐빵이 되었을것이다.

원래 무주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 지금도 나제통문이 남아 있을 정도록 수시로 서로간의 다툼이 잦았던 지역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지명이 주계(朱溪)현(붉은 시내라는 의미 그만큼 싸움이 많음)과  무풍현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서로 화합하라는 의미에서 조선시대 무풍의 무와 주계의 주를 합하여 무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주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데 이 더위에 가장 적당한곳이 적상산 와인 동굴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잠시 더위도 식힐겸 구불길을 올라갔다.

과연 예상대로 서늘함이 그대로 전해오는 머루와인 동굴이었다.

와인동굴을 본후 적상산 사고가 위에 있다기에 차를 몰고 더 위로 올라갔다.

정상에 다다르니 적상호가 나타났다.

한수원에서 관리하는 적상호는 양수발전소로 혹여 있을지 모를 블랙아웃에 대비하는 예비전력이라고 한다.

60만킬로와트로 95년에 3천억을 들여 완공하였는데 전국에 이런 예비 양수 발전소가 여섯군데나 있다고 한다.  

이곳 적상호에는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 경관이 끝내준다.

적상호를 좀더 올라가면은 바로 알토란 같은 해설사님이 계시는 적상산 사고가 나온다.

적상산(赤裳山)은 가을에 붉은 단풍이 치마른 두른듯 예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주변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천혜의 요새다.

그래서 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있는것이다.

원래 사고는 한양과 전주 그리고 상주에 있었는데 자주 불타 훼손되자 임란이후 그 장소를 험준한 산으로 바꾼것이다.

처음에는 내사고인 춘추관과 외사고인 묘향산,오대산, 태백산, 강화도 정족산성 이렇게 다섯군데에 보관하였으나 호란이후에는 묘향산사고를 무주 적상산 사고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사고에는 달랑 두개의 건물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이씨 왕조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각 그리고 각종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이 있다.

조선왕조 실록은 사관들에 의해 철저하게 검증되고 사실대로 쓰여진 기록이기에 그 당시에 왕도 함부로 볼수 없을정도로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기에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지금도 세계의 유산으로서 당당하게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27대 임금중 고종과 순종은 일제에 의해 실록이 작성되어 그 객관성이 의문시되기에 25대 철종까지만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러한 실록과 사고의 내용뿐 아니라 약 2시간에 걸쳐 각종 역사를 청산유수로 설명을 해내시는 적상산 사고의 해설사님의 설명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더위를 이겨낼수 있음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만남이 되었고 또한 무주의 여행이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그래서 무주군청에 전화를 했다.

그 해설사님 정말 멋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