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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쓰라린 패배 병자호란...

최재춘 2016. 6. 17. 10:51

우리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으로서 1000여회의 외침을 받았어도 한번도 다른 국가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가졌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과연 민족성이 착하고 순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나라를 침략할수 있는 군사력 부족 때문은 아닌지  너무나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러한 외침 속에서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대부분의 침략자들을 치열한 공방속에 격퇴하였는데 유독 커다란 아픔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쓰라린 패배가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다독이며 새롭게 펼쳐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기존의 명과 새롭게 일어나는 청과의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던 광해군은  인조반정을 통해 정권을 찬탈당하고 만다.

그리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서인과 인조는 친명배금을 정책을 기치로 청을 오랑캐라 칭하며 죽어가는 명과 떠오르는 청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썩은 동아줄만 움켜 쥔채 제대로 된 군사력 준비는 소홀히 하면서 청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간다.

결국 1636년 12월 청의 홍타이지는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게 되고 인조는 강화도 피난 계획을 세웠으나 너무나 빠른 청의 진군에 겨우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러나 45일간의 고립무원속에 결국은 항복하고 청의 홍타이지 앞에 무뤂을 꿇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의 치욕을 당하며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의 패배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패배의 댓가로 두왕자를 볼모로 그리고 수십만의 아녀자를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고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낮익은 단어 화냥년(환향녀:청의 끌려갔다 다시 돌아온 조선의 아녀자)이라는 서글픈 역사적 단어를 만들어 냈고 이 단어를 통해 마치 전쟁의 책임이 힘없는 포로 아녀자들에게 있는냥  사대부들은 그들의 책임을 슬며시 던져버렸다.

일찌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고 신채호 선생님은 말씀 하셨다. 

잘못된 국제정세 그리고 아무런 준비와 대책없이 사대부들이 부린 호언과 객기는  위기를 자초하고 그 피해는  오롯이 힘없는 백성들의  몫이었음을 병자호란은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기에 오늘날 G2(미국/중국)의 경쟁속에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위정자들의 지혜와 슬기가 절실하다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