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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와 함께한 여름휴가..

최재춘 2015. 8. 11. 14:03

운동을 하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어 깁스를 한채 여름 휴가를 갈수 없어 부득이 깁스를 풀고 뜨거운 여름 휴가를 출발하였다.

아마도 옆지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결혼 20주년 제주도 여행 다음으로 처음인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맛집 여행을 계획하다 남도쪽 못가본곳을 다녀 보자라는 취지 아래 첫째날은 해남 대흥사를 시작으로 고산 윤선도 선생님의 발자취가 오롯이 남아있는 생가를 거쳐  땅끝마을을 마지막으로 강진으로 넘어와 1박을 하였다.

이튿날 일어나 강진 청자 도자기 축제장으로 향했는데 첫째날 무리한 걸음걸이에 아픈 다리에 통증이 있기에 휠체어를 빌려 도자기 축제장을 돌아다녔다.

그 덕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몸이 불편한 분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봐라보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도자기 축제라고 해서 기대를 하였으나 그다지 내실이 있지는 않은것 같았다.

점심을 한후에는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유배지를 보러 이동을 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백련사 절이 있기에 잠깐 들렀다..

동백나무 군락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백련사는 아담하며 운치가 있는 절이었다.

바로 옆 다산 선생님의 박물관을 보고 뒤쪽에 있는 다산초당까지 가파른 길을 옆지기에 의지한채 힘겹게 올라갔다.

 조선말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남도의 끝자락 강진 산림속에서 18년을 해남 외가집에서 빌려온 수천권의 책을 보면서 유배의 아픔속에서도 수많은 저술을 하셨던 다산 선생님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차를 몰아 남해로 바쁘게 움직였다.

남해에 도착하자 마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불꽃의 삶을 불살랐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라고 외치며 장열하게 돌아가신 노량해전 앞바다를 보며 잠시 충무공의 호국의 정신을 가슴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가 저물어지기전에 우리는 가천 다랭이 마을을 들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냥  우리 시골에 있는 다랭이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어둠이 짙어지자 마늘 전복과 멍게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후 남해에 있는 모텔을 잡았다. 그러나  가격대비 시설은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 남해 푸른바다 전경은 그래도 조금은 위안을 받을만 하였다..

갈치조림으로 식사를 한후 금산에 보리암으로 서둘렀다. 그러나 차량들은 도로에서부터 정체되어 있었다.

30여분을 가다서다 반복하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후 셔틀버스로 보리암 정상까지 이동을 하였다.

남해 앞바다가 한눈에 잡힐듯 그 자연의 아름다움은 역시 보리암이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였다.

산새도 기암 바위들과 어울려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꼭 한번쯤은 가봤으면 하는 보리암이다..

돌아오는길 진주에 들러 남한 냉면에 최고봉 진주 냉면 하연옥을 찾아갔다. 조금 늦은 2시반이기에 그리 붐비지 않을것이라 생각을 하였으나 기대와는 달리 냉면집은 100여명이 넘는 기다리는 손님으로 아수라장이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겨우 한시간 넘게 기다려 자리를 잡자 말자 물냉면에 육전 그리고 사리를 하나 추가하였다..남한 최고의 냉면맛인지는 모르겠으나 양은 푸짐하기에 추가 사리는 결국 다 소화하지 못하고 총총걸음으로 나왔다..

아무튼 아픈 다리로 2박 3일간 옆지기와 함께 한 여름 휴가는  그런데로 내용도 있고 의미도 있는 거기에다 보람도 있는 휴가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보면서 더위속에서도 아픈 나를 부축해 다녔던 옆지기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