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정화 함대..
우리는 바스코 다가마나 콜롬버스의 이름은 알고 있어도 왜 정화라는 이름은 모르고 있는가.
어느 순간부터 서양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나머지 국가의 역사를 재단하는 우리의 모습속에서 오늘은 잊혀진 동양의 웅장한 해양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15세기 포르투갈의 바스코다가마는 120톤 3척에 승무원 170명으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까지 항해하고 새로운 뱃길을 열어 제꼈다.
그리고 스페인의 콜럼버스도 15세기 250톤 3척에 120명의 승무원으로 4번에 걸친 항해를 통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우리는 역사서를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100년 앞선 14세기 명나라 영락제 시대 정화는 1500톤급을 포함한 62척의 함선에 2만7천명의 승무원을 싣고 인도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까지 7번의 항해를 통해 우수한 명나라의 문화를 전파하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내고 세계의 중심이 명나라에 있음을 알려내는 항해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항해를 이끌었던 정화는 원래 윈난성에서 원나라 지배를 받았으나 명나라의 등장으로 포로로 잡혀 가게 되고 이후 거세되어 명나라 환관이 되었고 영락제의 정난의 변때 큰 공을 세워 환관의 최고직인 태감이 되었다.
이후 영락제의 명을 받들어 잔당들 소탕 및 주변국들에게 명나라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7차례나 항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일찌기 역사는 해양을 장악한 국가가 그 시대를 주름 잡았었다.
15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16세기 스페인 그리고 19세기 영국 지금의 미국이 그러하다.
그러나 14세기 그 화려하고도 장엄한 합대를 유지하던 동양의 명나라는 어디로 가고 겨우 군함 몇척에 홍콩을 마카오를 유럽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던가..
정화가 죽고나서 명나라는 함대의 유지가 너무나 많은 경비가 소요되기에 더이상 유지하기가 곤란하다고 느껴 함대를 해산하고 대륙으로 힘을 집중시키고 더이상의 항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 이후 명나라는 역사의 중심에서 동양의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고 만것이다..
이제 포효하는 호랑이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정화의 후예들이 실패한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종이 호랑이가 우뚝 일어설수록 현재의 패권국가와 미래의 패권 국가속에 어지러운 줄타기를 해야하는 우리의 처지가 한편으로는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