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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공의 희생양을 뛰어넘어...

최재춘 2014. 9. 16. 15:04

어려서 초등 학교때 여러가지 숙제를 내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참 난감한것이 대변을 받아오는 일이었다. 작은봉지 큰 봉지 두개를 주어 받아 오게 하였는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시절이라 기생충이 너무나 많아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서 무슨 약을 한웅큼 주었는데 보는 자리서 다 먹어야 하고 약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친구들의 웃음 소리도 높낮이를 달리 하였다. 때론 자신의 대변 대신 남의 대변을 가져오는 사람 심지어 된장을 담아 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어린시절 우리들과 기생충을 일찍 이별하게 만든 장본인이 1964년 설립한 한국 기생충 박멸 협회다. 그러나 이 협회는 전국에 협회를 만들어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 1980년대는 더이상 활동을 안해도 될정도로 기생충을 박멸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된 협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고  결국은 또다른 변신을 통해 1982년 한국건강관리협회로 탈바꿈 하여 청소년 건강증진, 비만 고지혈증, 만성질병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운명을 같이하는 협회가 있는데 바로 1961년 설립한 대한 가족계획 협회다.

한국동란후 먹고 살기 힘든 조건속에서도 우리 부모님들은 보통 6명 이상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자 협회는 60년대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70년대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 80년대 "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하며 대대적인 출산 억제 정책을 펼쳤고 급기야는 예비군훈련을 면제해주며 정관 수술을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20년간의 정부의 정책은 급속한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합계 출산율 2.0이 무너져 결국에는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협회는 그 목적을 상실 해체 위기에 처해지자 99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2005년 인구보건복지 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여성건강증진, 출산, 양육, 출산장려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너무나 일을 잘해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된 두 협회는 지금은 또다른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자기 성공을 위해 부단한 노력들을 하고 있으며 아직도 기생충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캄보디아, 라오스등에도 놀라운 우리의 노우하우를 수출하며 세계 평화와 건강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