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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의 추억..

최재춘 2014. 1. 28. 11:17

오랜만에 고향의 청취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렸을적 먹을것 군것질 할것이 부족한 시절 엿은 유일한 당도높은 간식거리 였다.

보통 명절에 집에서 엿을 하기도 하였지만 평상시에는 엿장수가 가져오는 엿을 사먹곤 하였다.

조용한 동네 어귀에 울려 퍼지는 쨍그랑 쨍그랑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동네 꼬마들  저마다의 가슴을 울렁 울렁 이게 하고 급기야는 일단은 무조건 엿장수의 가위 소리를 따라 나가본다.

그러면 윗집의 옆집의 친구들이 비닐 포대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소주 병들을 가지고 와서 엿을 바꾸어 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아직도 신을 만한 아버지의 흰 고무신을 들고 가야 하나 아니면 조금 닳아 빠진 쟁기 보습을 들고 가야 하나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뒷켠에 있던 어머니가 가끔식 깨를 볶을때 사용하던 오래된 솥 뚜껑을 들고 의기 양양하게 엿장수에게 내민다.

그러면 엿장수는 보통 가락엿과 판엿을 가지고 오는데  내가 보기에는 비닐포대보다 훨씬 값나가는 솥뚜껑임에도 불구하고 엿의 양은 별반 차이가 없이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데로다.

그래서 엿장수 마음데로라는 말이 탄생하였는데 엿의 양을 종잡을수가 없다.

같은 비닐포대를 가져가도 그때그때 엿치기해서 주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말 탄생의 한 전설은 우리는 보통 엿장수가 1분에 가위질을 몇번 하는지 서로 내기를 하기도 하였는데 보통 이 가위질을 엿장수 마음데로 한다고 해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아무튼 엿장수의 요란한 행차가 지나고 나서 저녁이 되면 각 집안은 부모님이 들에서 돌아 오셔서 없어진 고무신이며 쟁기 보습이며 솥뚜껑을 보고 일대 야단 법석이 일어나고 일단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동구 밖으로 나가 낮에 먹었던 달콤한 엿의 향기를 떠올리며 조용해질 때를 기다려 다시 집으로 몰래 들어가곤 하였던 그 시절이었다.

 

지금은 당도가 높은 수많은 과자 홍수속에 엿의 맛과 귀함이 떨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고무신과 바꾸어 먹던 어린시절 그 엿의 맛을 잊을수가 없다.

이제 몇일 있으면 설 명절인데 부모님이 해주시던 물엿 떡에다 찍어 먹으면 그리 맛있었는데 참 그립게 먹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장판을 태우며 만들던 그 엿의 추억은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지고..

어디 물엿을 맛나게 하는 집 없을꺼나...